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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종교,의식,토속신앙

기독교 - 썽컨(ສອງຄອນ) 교회

by Dr.Sombuun 2022. 6. 15.

세 번째로 중남부 지역에 있었던 복음 전파의 내용이다. 1902년에 베트남을 통해 들어온 스위스형제단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북부지역과 서부 지역과는 달리 중남부 지역은 선교사가 정착하고 현지인과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당시 라오스는 베트남, 캄보디아와 함께 인도차이나 프랑스 식민 지배 하에 있었다. 스위스 형제단은 불어를 하는 가브리엘 꽁텟(Gabriel Contesse)을 선교사로 훈련시켜 파송하였는데, 그는 모리스 윌리(Maurice Willy)와 함께 9월 4일 제노아에서 출발하여 베트남 사이공(호치민시)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서 여러번 배를 갈아타고 메콩강을 거슬러 캄보디아를 거쳐 10월 30일에 라오스에 도착하였다. 일행이 정착한 곳은 지금은 싸완나켓도(道)에 속한 조그만 시골 마을이지만 당시는 그 지역의 중요한 행정관청과 군대가 주둔해 있었던 썽컨(ສອງຄອນ) 지역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미혼이었던 선교사가 결혼도 하고 다른 신임 선교사들이 합류함에 따라 그 조직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이들은 팀 사역을 통해 의료사역, 구제사역, 성경변역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그 결과 점차 많은 현지인들이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세례받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1906년 티벳에서 발병하여 라오스 북부를 거쳐 중부까지 내려온 전염병(이질 또는 콜레라 라고 함)으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다. 가족, 친척들도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병에 전염된 사람을 버리고 마을을 떠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교사들과 교인들은 끝까지 남아 병든 사람을 치료하며 그들과 함께 하였다. 이 와중에 이 지역에 온 최초의 선교사 꽁텟 부부도 전염되어 같은 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현재 썽컨교회 앞에는 5기의 묘가 있는데 꽁텟 부부, 복통으로 사망한 윌리부인, 1932년에 라오스어로 된 신구약 66권을 최초로 번역 제작한 오뎃따의 부인 그리고 시신을 찾지 못해서 가묘를 한 오뎃따의 아들의 묘이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터툴리안의 말과 같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라오스 중 남부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썽컨교회가 있는 마을 입구에서 엄격한 검문이 실시되고 있어 외부인이 방문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썽컨 교회는 지금도 마을 사람 전체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며, 인구가 많을 때는 교인들의 숫자가 2,000명에 육박했었다고 한다.

 

큐! 라오스 (2019) 라오스 지역연구회, pp65-66

 

2017.02.07 라오스 싸완나켓의 외진 한 마을에 있는 썽컨교회
2017.02.07 라오스 싸완나켓의 외진 한 마을에 있는 썽컨교회
2017.02.07 라오스 싸완나켓의 외진 한 마을에 있는 썽컨교회
2017.02.07 라오스 싸완나켓의 외진 한 마을에 있는 썽컨교회
2017.02.07 라오스 싸완나켓의 외진 한 마을에 있는 썽컨교회 옆 선교사님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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