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소,관광명소,식당]/위앙짠 - 탓루앙

탓루앙 (소개)

by Dr.Sombuun 2022. 5. 14.

라오스의 탓(ທາດ, stupas)은 대부분의 탑이 가진 뾰죽한 탑 모양의 첨탑과 함께 주름 살 없는 연꽃 봉오리를 나타내는 four-corned 모양의 특유한 곡선을 보인다. 위 앙짠에 있는 탓루앙이 이 형태의 모형이라고 여겨진다. 높은 봉우리의 지붕은 삼세와 일곱가지 깨달음의 불교 교리에 맞춰 홀수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지붕의 끝은 네 귀퉁이에 위에서 건물로 떨어지는 악령을 잡는다고 이야기되는 주로 긴 손가락 닮은 갈고리를 가진 반복되는 불꽃 주제를 띈 형상이다. 중앙 지붕 능선 위의 우산 모양의 첨탑에는 흔히 메루산을 묘사하는 2단으로 정렬된 작은 나가(부처를 보호한 뱀)가 있다ໃ  

 

큐! 라오스 (2019) 라오스 지역연구, p54

 

  • 오픈시간: 연중무휴 8:00~17:00
  • 입장료: 외국인 30,000킵, 라오인 5,000킵 (탓루앙, 허파깨오, 왓씨싸갯 모두 동일)

2023.01.28 개장시간 및 입장료


 

2023.01.18 탓루앙 전경

 

탓루앙의 역사적 배경과 국가적 상징

Joy

 

라오스를 처음 찾는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여러 현지인들조차도 탓루앙(Grand Stupa, ທາດຫລວງ)의 기원과 역사 및 상징적인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른 체 단지 관광지 또는 불교 성지로만 인식하는 분들이 많다. 종교 의무적으로 축제에 참여하거나, 일시 방문하여 인증 기념사진을 찍는다. 국내외 승려들과 독실한 신자들은 때를 따라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불공을 드린다. 유적지 안내 팻말, 관영 신문, 관계부처 및 여행사 홈페이지, 승려들이 집필한 도서 및 지역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들은 탓루앙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이에 라오스의 역사 및 문화와 관련된 신문기사, 도서, 인터넷 및 탐문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현재 라오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종교 및 국가적 상징물 ‘탓루앙’의 역사와 의미들을 정리해 본다.

 

 

1. 기원과 의미

탓(ທາດ)은 ‘종, 노예, 머슴, 불탑, 사리탑, 쩨디(Chedi), [화학] 원소’를 의미한다. 루앙(ຫລວງ)은 ‘도시, 국가, 왕의, 큰, 거대한, 광대한, [무게 및 측량] 단위, 전문적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탓루앙(ທາດຫລວງ)은 문자적으로 ‘거대한 탑’을 의미하며 현지인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신성한 위대한 탑”이라는 의미로 각인되어 있다.


스투파(Stupa)는 고대 인도어인 범어(또는 산스크리트어)의 stūpa(‘혼의 퇴적, 응고, 응집, 건립, 적중’이라는 의미)와 팔리어(Pali)의 thūpa(‘묘’의 뜻을 갖는 영어 tomb과 관련)에서 유래하며 ‘위쪽이 뾰족한 불교의 탑’을 나타낸다. 스투파의 중국 한자식 표기인 ‘탑파(塔婆)’는 부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일종의 무덤 건축물로 ‘불탑 또는 탑’이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 영어 ‘Stupa’는 ‘성골함, 성물함, 유물함’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장례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교 탄생 이전에도 인도 동북부 지역에서는 전통장례 풍습에 따라 시신을 화장한 후 재를 수거하여 그릇들에 담아 분묘에 보관했다고 한다.

 

스투파는 4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진신사리탑(샤리라카, Sariraka)은 석가(고타마 싯 다르타), 아라한, 과거칠불의 실제 유골을 보관한 것이다. 법신사리탑(파리보기카, Paribhogika)은 부처가 사용했던 발우 같은 물건을 봉안한 것이다. 그 외에도 부처의 일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스러운 장소를 기념해 세운 건축물인 웃데시카(Uddsika) 와 서원 기도탑(Votive)이 있다.

 

불탑의 기원은 256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후 그 진신사리(유골)를 모신 무덤에 있다.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부처를 형상화하는 것은 경망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수백 년(무불상 시기) 동안 무덤 자체를 영원한 적정의 세계(소멸, 반열반)에 도달한 부처의 상징이자, 석가 자체이며 그의 가르침으로서, 지극히 성스러운 건조물로 인식하여 숭배했던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인도의 아소카왕 때부터 부처의 사리가 여러 지방으로 옮겨지면서 여러 형태의 불탑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네모난 기단 위에 봉분에 해당하는 둥근 구조물을 얹고 다시 그 위에 우산 모양의 상륜부를 얹은 당시 인도의 무덤 형태를 따랐다. 아소카왕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전역 8,400여개 장소에 건설했던 스투파는 샤리라카로서 고타마 붓다 즉 부처의 유물을 담고 있다고 전해지며, 그 중 하나가 탓루왕이다.

 

불교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스투파는 불교의 공간적인 표시로서 뿐만 아니라 부처를 회상하며 상징적인 의식을 수행하려고 해당 장소에 모이려는 방문객들을 끌어들이는 곳이 되었다. 이제는 일반 신자들도 사망하면 시신을 화장하여 유골을 수거하고 사원에 탑을 세워 보관하면서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자꾸 바꾸어 간다. 기념탑이나 봉헌탑은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표시(또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을 유도하여 진짜 기억으로 남게 만드는 힘이 있다.

 

 

2. 건축 (전설)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마하랏왕(BC 304-232)은 군대 장관이자 통치자였으며 지배를 위해 불교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그는 현재의 인도 북동부에서 기원한 불교를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가장 헌신적인 역할을 했다.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불교 선교사들을 후원하여 전 세계에 보냈다고 한다. 당시 덕망있던 승려 쏘나(Sona)와 우타라(Outala) 및 5명의 학자들이 기원전 218년경에 부처의 골반뼈(또는 가슴 뼈) 조각을 가져다가 현재 탓루왕 마을인 푸루왕 언덕에 모시고 크메르 형식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불교 승가를 지원하고 탑을 건축하여 불교를 확산시켰는데 이 탑은 단지 개인적인 신앙심의 표현으로서 뿐만 아니라 특정 공간에 불교의 존재를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위앙짠의 통치자였던 짠타부리 파씻티싹 또는 부리짠이 236년경에 4면 방첨 (obelisk) 석탑을 세워 우상(Idol)을 숭배하고 기도해 왔다고 한다. 이 성지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탑’이라는 뜻의 파 쩨디 로까쭐라마니라고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당시 부처의 나머지 잔해들도 전 세계 각처 84,000개 장소에 보내져 세워진 탑 안에 안치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불경(tripitaka)에서 공부하는 가르침의 숫자라고 한다. 부처의 재가 안치된 후 원래 방첨탑 주변에 새로운 탑이 건축되면서 기념탑은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되었고 라오스 불교 신자들의 예배처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9~15세기에 동남아시아에 존재하며, 현재 캄보디아의 원류가 된 크메르 제국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으로 불교에 헌신한 자야바라만 7세(1125-1215)의 동상과 통치기(1181-1218)의 유적물이 탓루앙에서 발굴되었다. 어릴적 힌두교와 불교를 크메르와 공유하고 산스크리트어를 공식 언어로 이용했던 참족과 섞여 살았다고 한다. 자야바 르만 7세의 통치기간 동안 힌두교 사원에는 모두 불상을 모셔두고 경배하게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탓루앙의 원래 방첩탑은 사실 고대 참족 건축물로 9-14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수도원(cloister) 내부 북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탓루앙의 기단 부분은 크메르, 인도, 라오스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 공양을 하도록 작은 사원(허와이)이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적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시대에 맞게끔 계속 변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3. 개축

탓루앙이 고대 라오스 중반기로 알려져 있는 16세기의 초에 개축된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근거가 명확하다. 1566년에 싸이쎗타티랏(ເສດຖາທິຣາດ; 1534–1572)왕이 란쌍왕국의 옛 도읍이었던 루앙파방(당시 씨앙덩 씨앙텅)에서 위앙짠으로 수도를 옮긴지 6년 후에 명령을 하달하여 현재의 탑으로 개축 하면서 탓루앙(Grand Stupa)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당시 할아버지가 통치하다 서거하면서 통치를 떠맡게 된 현재 태국 북부지역에 위치한 란나왕국의 수도였던 치앙마이의 거대한 탑과 비슷한, 화려한 예배 처소를 라오스에도 갖기 원해서 개축했다고 한다. 물론 버마 바간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왕국을 수호하려던 목적이었다. 싸이 쎗타티랏 왕의 동상은 현재 탓루앙 앞에 세워져 있으면서 탓루앙과 함께 숭배의 대상이다.

 

싸이쎄타티랏 왕은 깨달음을 얻은 보티야나(Bhothiyana)가 되기 원해서 탑 주변을 동일한 크기의 팔라미(선행을 채움)로 둘러싼다. 각각의 작은 탑의 기반(단)에는 평평한 금판에 아리야쌋(부처의 가르침의 정수 4가지)을 새겼다. 이 판에는 ‘이 탑에는 부처의 재가 담겨져 있으며 싸이쎄타티랏왕이 건축하였고 5천년 이상 지속되길 바란다.’고 씌어 있다. 사원의 개축 일자가 역사적으로도 명확하며 탓루앙 동편 출입문에 있는 수도원 안쪽에서 볼 수 있다. 두 번째 층은 부처의 30가지 완성된 모습을 상징하는 30개의 뾰족탑이 연꽃의 봉우리를 형상화한 중앙 탑을 둘러싸고 있고 정면에는 불공을 드리는 ‘허와이’ 가 있다. 중앙에 솟아 있는 탑은 44미터 높이이며 기초 단의 둘레는 67×68m이다. 2 층은 각 변이 47m 그리고 3층은 각 변이 29m이다.

 

본래 탓루앙 주변에 4개의 사원을 건축하였으나 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북쪽의 왓 루앙느아와 남쪽의 왓 루앙따이만 남아있다. 탓루앙도 1828년도에 시암의 침략으로 심하게 부서졌으며 방치되어 있었었다. 1900년경에 프랑스가 복원을 시도했지만 원형대로 복구하지 못했다가 1930년대에 재설계되어 재건되었다. 또한 중국인들에 의해 노략 당해 상당한 유물이 소실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후에 재건축되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탓루앙은 역사적으로도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불교 유적이었다.

 

 

4. 탓루앙 축제

싸이쎗타티랏 왕은 자신을 불교의 수호자로 각인시키고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르기 원해 전생애 모든 차원에서 공덕을 쌓고 싶어 했기에 탓루앙을 개축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매년 축제를 통해 란쌍왕국 전 지역에 있는 지방 관리들의 충성심을 확인할 행사를 마련해주었다. 현재 이 축제는 여러 신들과 라오스 불교의 제 3의 물결이 되는데 기여한 파응음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매년 행사를 통해 왕은 란쌍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모여 공덕(merit)을 쌓고 종교적인 수행을 준수하게 했다.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함께 축하하며 결속을 다지고 왕국이 완전하게 유지되도록 강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탓루앙 축제는 라오인이라면 '평생에 한 번은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중요한 행사다. 라오스인들이 한데 모여 승려들에게 공양을 바치고 이를 다시 가난 한 사람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덕을 쌓고 국가의 통합을 도모하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의 장이다. 위앙짠 시민뿐만 아니라 라오스 17개 각 지방에서 온 수천 명의 사람이 한데 모여 경건한 불교의식을 치르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긴다.

 

가장 극적인 행사는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흰 코끼리를 앞세우고 씨므망 사원에서 탓루왕까지 밀납으로 만든 집 구조물을 들고 해파쌋펑(ແຫ່ຜາສາດເຜີ້ງ)이라고 하는 가두행진을 한 후, 저녁에 탓루왕 주변을 3번씩 돌면서 소원을 비는 것이다. 밀납 성 행진은 나무 조각이나 바나나 줄기로 집 모양의 구조물에 조각된 밀납, 양초, 향, 지폐, 펜, 책, 꽃들로 장식하여 성처럼 만든 것을 들고 사원의 불당 주변과 시가를 행진하는 것이다. 부처와 성지를 숭배하기 위한 밀납 성 봉헌은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전통으로 사후에 극락세계에서 머무르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지고 제물을 드려 공덕을 쌓고, 다시 태어나면 더 좋은 삶을 살게 된다고 믿는다. 마을의 사원에서는 부처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제자들에게 경배하는 뜻으로 승려를 따라 불당을 3차례 돈다.

 

전설에 따르면 ‘부처의 제자들이 언쟁을하자 부처가 제자들에게 연합할 것을 훈계했지만 제자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부처는 숲 속으로 혼자 들어가 있었고 그 동안 코끼리, 원숭이 같은 동물들이 꿀을 부처에서 갖다 바쳤다. 승려들이 이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그때부터 부처의 능력을 믿게 되었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여 연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서 꿀, 밀납 및 초를 사용하여 그때 사건을 기억하며 지금까지 부처를 숭배하는 행사를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수도 위앙짠의 씨쌋따낙 구에서는 수호신이 있다고 믿는 기둥(락므앙) 옆에 있는 싸이 쎄타티랏왕이 세운 씨므앙 사원에서 행렬을 시작한다. 수도 9개 구에서도 각각 행렬을 시작하여 농본사원에 모두 모여 큰 행렬을 이루어 탓루왕으로 시가행진을 한다. 그리고 각 마을의 사원으로 돌아가거나 옹뜨 사원에서 행사가 끝난다. 탓루앙 축제기간에는 왓 씨므앙에서 탓루앙까지 이르는 거리에 승려들이 늘어서고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며 순례를 오는 라오스 사람들로 북적인다.

 

 

5. 국가적 상징으로서 의미

왕국 시대의 라오스 국장(Emblem)은 옛날부터 신성시 되어 온 흰 코끼리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다가 사회주의 국가가 된 1975년 이후에는 구소련 국장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제정되었다.

 

1991년에 수정된 라오스 국장(헌법 10장 90항에 명시)은 1975년에 제정된 국장에 그려져 있던 낫과 망치, 붉은 별을 국가 성지인 탓루앙으로 바꾼 형태다. 국장 가운데에는 국가적 성지인 탓루앙이 그려져 있으며 탑 아래쪽에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그려져 있다. 도로 왼쪽에는 남 응움댐의 수력발전을 상징하고, 오른쪽에는 논이 그려져 있다. 국장 아래쪽에는 톱니바퀴가 그려져 있으며 벼 이삭이 국장의 양쪽을 감싸고 있다. 국장 아래쪽에 그려져 있는 빨간색 리본 가운데에는 라오스의 공식 명칭인 ‘라오 인민 민주 공화국(ສາທາລະນະລັດ ປະຊາທິປະໄຕ ປະຊາຊົນລາວ)’이 라오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양쪽에는 라오스의 표어인 ‘평화, 독립, 민주주의’(왼쪽, ສັນຕິພາບ ເອກະລາດ ປະຊາທິປະໄຕ), ‘통일과 번영’(오른쪽, ເອກະພາບ ວັດຖະນາຖາວອນ)이 라오어로 기록되어 있다.

 

라오은행에서 발행하는 라오스 지폐에는 3대 대통령이자 1대 총리였던 까이썬 폼위한 초상과 탓루앙이 포함된 국장이 표시되어 있다.
라오스는 국가적인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탓루앙이 포함된 국장과 비슷한 기장이나 표장을 대부분의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지폐, 기념품, 홍보 소개자료 등에도 대부분 탓루앙을 소개하며 국내외에 각인시키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예전에는 금지시켰던 혼을 불러들이는 초혼행사인 바씨(Baci) 행사를 모든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장식시키고 있으며 탓루앙 축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탓루앙은 종교적인 상징물로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상징물로서 라오스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탓루앙 광장에는 국회 의사당뿐 아니라 불탑과 유사한 형태의 무명용사 탑이 있다. 국가 경축일 및 국가 장례식 등 각종 행사들을 탓루앙 광장에서 개최하면서 라오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라오스의 건국 및 불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체제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다.

 

불교 신자들은 부처가 생전에 쓰던 집기, 해탈한 보리수, 불경을 뜻하는 법륜, 전도를 나타내는 발자국, 하늘로 오르는 길, 부처를 상징하는 5색 깃발 등 기념 또는 상징이 될 만한 것들을 신성시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는 자신이 아니라 불법을 잘 지키라고 지시했었다. 즉 부처 자신이 아니라 부처가 설파한 진리 자체를 경배하라는 명령의 가르침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상징화하여 행사를 통해 각인시킴으로써 본연의 가르침을 벗어나게 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동남아시아 대륙부 인도차이나 반도의 내륙에 감추어져 있었던 보배 ‘라오스’가 과거의 역사적인 아픔들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여러 민족의 다양성을 한데 아우르며 국가적 표어인 ‘평화, 독립, 민주주의, 통일, 번영’의 기치를 성취해 주변국을 선도해 가는 지속발전 가능한 국가가 되는 것을 생전에 보고 싶은 것은 이 땅에서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모든 자원봉사자들의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라오스에 대한 좋은 것들로만 각인되기 바란다.

 

 

※ 참고문헌

https://www.laostudies.org/system/files/subscription/JLS-v2-i2-Nov2011-martinez.pdf 
○ https://www.renown-travel.com/laos/temples/pha-that-luang.html
○ http://www.moe.gov.la/ries/data/TGTBM6/EngM6-tb-web.pdf (중6 영어책)
○ 비엔티엔 타임즈 2010. 10. 8 Do you really know That Luang?
○ 위키디피아 https://en.wikipedia.org/wiki/Pha_That_Luang
○ http://www.laos-guide-999.com/pha-that-luang.html
○ http://factsanddetails.com/southeast-asia/Laos/sub5_3f/entry-3563.html#chapter-8 

 

※ 프랑스어(구글번역 가능)

○ https://www.academia.edu/10745287/Les_inscriptions_du_That_Luang_de_Vientiane 
○ https://laosmonamour.wordpress.com/2012/11/27/phra-that-luang-the-symbol-of-lao-permanence/

 

※ 도서

○ 탓루왕 위앙짠, Kavi (1999)

 


2024.11.08 위앙짠 마이에 게제된 탓루앙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기사.

 

핵심 내용:

  • 탓 루앙의 역사: 탓 루앙은 라오스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종교적 상징물이며, 라오스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입니다.
  • 건축 시기: 탓 루앙은 기원전 236년(370년 전)경 처음 세워졌으며, 란쌍왕조의 싸이쎄타티랏 왕에 의해 1560년 루앙파방에서 라오스로 옮겨졌습니다. 1566-1570년에 쎄타티랏 왕에 의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종교적 의미: 탓 루앙은 불교 신자들에게 성스러운 곳으로,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 문화적 가치: 탓 루앙은 라오스인들의 깊은 신앙심과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건축물로, 라오스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댓글